런던은 건축

오픈하우스 런던 디렉터 추천

세계적인 건축 도시 런던, 그 기나긴 이야기로 안내하는 작은 책

“이 책을 읽다 보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예 그 곳에서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고, 그중에 짧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 로리 올케이토, 오픈하우스 런던 디렉터

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건 의견이다!

검색만 하면 원하는 정보가 온라인에 가득한데 굳이 가이드북을 살 이유가 있을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장황한 정보보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의견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대란 없었으니까.

런던 최고의 건물을 엄선해 소개하는 이 책 <런던은 건축>은 뻔뻔할 정도로 짧은 가이드북이다. 디자인/건축 전문 매체 <월페이퍼*>의 에디터인 두 저자의 박식한 해설에 <타임스>, <가디언>, <모노클>과 일하는 포토그래퍼 태런 윌쿠의 탁월한 사진을 더한 이 책은 런던의 뛰어난 건축을 오감으로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더없이 알맞다. 책에 소개한 리스트를 바탕으로 걷기 여행 코스를 제안했는데 5~10가지 건축물을 반나절 안에 돌아볼 수 있는 적절한 동선이라 부담없이 알차다.

왜 런던은 건축일까?

건물은 스토리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스토리(storey)라는 영어 단어에는 건물의 ‘층’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그림을 그려 넣은 일련의 창문을 의미하는 중세 라틴어 ‘히스토리아’에서 유래했으며, 실제로 인물을 그려 넣은 그림이나 조각(이를테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모두 스토리(story)라고 칭하던 때도 있었다.

그렇다면 런던이라는 도시는 도대체 얼마나 방대한 도서관인 셈인가. 문득 모든 건물이 누가 읽어 주길, 또는 새롭게 쓰이길, 아니면 다시 회자되길 기다리는 책이 된다. 이 얼마나 도시를 상상하는 매력적인 방법인가!

매년 9월 런던에선 최고의 건물들을 자유롭게 출입하며 감상할 수 있는 축제, ‘오픈하우스 런던’이 열린다. 다채로운 풍경과 개성있는 건물이 어우러진 ‘건축의 도시’ 런던이기에 이 이벤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며 올해 서른 번째 오픈한다.

17세기 네오클래식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런던이라는 도시는 얼마나 방대한 도서관인가!

건물들이 들려주는 스토리는 처음에 짐작했던 것과 번번이 다르다. 런던 도심에서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 넘버원 폴트리(No.6)만 해도 그렇다. 설계가가 이미 세상을 떠난 후 80년대의 디자인을 90년대에 완성한 이 건물을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웃음거리로 취급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지금은 순수주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장난스러운 에너지를 발하는 이 건물을 모두 사랑한다. 어쩌면 계속해서 변모하는 도시에서 건물들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고쳐 쓰는 건지도 모른다.

거나하게 점심을 먹은 은행장의 옆구리처럼 불룩한 형태의 워키토키(No.17)는 또 어떤가? 영감을 고스란히 현실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는 물론 완벽하다. 그러니 이곳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 (어쩌면 의외로 마음에 들어서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인파로 북적이는 코벤트 가든을 지나다 보면 멋진 콘서티나(아코디언 비슷한 6각형 악기) 같은 ‘로열 발레 학교의 염원의 다리(No.4)’를 못 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가끔 하늘을 봐야 하는 모양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연결통로인 이 다리는 발레리나의 동작처럼 우아한 모습이다.

힐링이 절실한 대도시 사람들에게 런던에서 가장 오래되고 근사한 녹지대 속 켄우드 하우스(No.54)는 어떨까? 17세기에 지어진 이 아름다운 네오클래식 저택은 사실 철거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이 집은 (유명 주류회사 회장을 지낸) 에드워드 세실 기네스가 1925년에 구입했고, 그는 공동체를 위해 공원과 갤러리로 꾸며 무료로 개방하기로 했다. 그의 유지는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에는 이렇게나 변덕스럽고 혹은 웃음을 자아내는 이례적이고 도전적인 건물들이 가득하다. 신중한 고민을 거쳐 선정된 건물들은 시간을 내서 찾아가 볼 가치가 충분하다.

당신의 다음 런던을 위한 세 가지 생각 (저널리스트 박찬용, 런던의 건축가 임지선, 번역가 강수정의 에세이를 수록한 팬데믹 에디션)

이 책은 팬데믹 에디션이다. 세 사람의 필자가 런던과 건축 여행을 주제로 쓴 에세이를 수록했다.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지금, 그리고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여행하게 될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며 쓴 글들이다.

첫 해외 여행지가 런던, 마지막 출장지도 런던인 잡지 에디터 박찬용은 건축 여행을 좋아한다. 건축물을 찾아가는 남다른 동선이 여행의 우연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런던은 그가 최적의 건축 여행지로 추천하는 곳 중 하나다.

“건축 여행을 떠나기에 런던은 아주 좋은 도시 중 하나다. … 런던은 옛것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것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좀 특이하다. 단순히 헐어 버리고 새로 짓거나, 그냥 오래됐다고 남겨 놓는 수준이 아니다. 괴팍할 만큼 보수적이면서도 정신 나갔다 싶을 만큼 전위적이고, 그러면서도 앞뒤가 딱딱 맞는 이상한 논리가 런던에는 있다.”

건축가 임지선은 2004년 런던에 정착한 이래 이토록 텅빈 풍경은 처음이었다. 관광객과 다양한 인종으로 늘 활기가 넘치던 거리에서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런던 북부 이즐링턴에 발이 묶인 채 옴짝달싹 못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오히려 오랜 관심사였던 지역 건축을 대면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임지선은 코로나19 이후 다시 활기를 띠게 될 도시 여행을 이렇게 제안한다.

“건축물의 외피를 우리가 걸치는 옷에 비유할 수 있다면, 코로나 이후 런던을 다시 찾을 때 건축물들이 입고 있는 옷을 가까이서 접촉해 보길 권한다. 못 본 새 어딘가 변했는지 낯설지만 눈에 익은 코트를 걸치고 등장한 친구를 만난 듯, 런던과의 대면 접촉은 우려보다 편안하고 기대보다 훨씬 반가울지 모른다.”

런던에 처음 갔을 때가 봄이었던 번역가 강수정은 다음 봄의 런던을 기대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늘 섣부르지만 봄이 올 거라고 믿는 마음에 봄은 온다. 그곳에 다시 가게 된다면 더 구석구석 깊숙이 길을 헤매 보고 싶다.”

런던에서 첫인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건물은 단연코 하나도 없다. 어쩌면 뛰어난 건물들은 그렇게 다층적인 면모를 지니는지도 모른다. 이 작은 책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고, 그중에 짧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런던은 건축
걷고 싶은 날의 런던 건축 안내서

지은이: 수자타 버먼, 로사 베르톨리
사진: 태런 윌쿠
옮긴이: 강수정
출판사: 에이치비 프레스
장르: 예술, 건축
출간일: 2021년 7월 12일
ISBN: 979-11-90314-08-4
분량: 200쪽  판형: 113x162mm 가격: 14,000원

London Architecture
by Sujata Burman and Rosa Bertoli
photographed by Teran Wilkhu
Korean edition published July 12, 2021